공연예술 | art

[서울] 2021 에픽하이 콘서트 (Epik High Is Here) 후기

소빛✨ 2022. 10. 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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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의 콘서트 후기입니다 :)

 

에픽하이는 나에게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다. 때는 바야흐로 2007년… 중2병이 좀 미리 씨게 와버린 애송이 본인은 에픽하이의 4집을 들으며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때 왜 삶이 힘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좀 다크한 초딩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산 음반이었는데 (가격이 12,800원이었던 것 같다) 2CD 앨범이 너덜너덜해지고 가사를 거의 외울 때까지 들었더랬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14년 동안 좋아한 첫사랑같은 뮤지션의 콘서트를 이번에 처음 갔다니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첫 7년은 지방의 소심한 학생이었고(당시엔 공연을 보러 서울에 간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이후 서울의 씩씩한 어른이었던 7년은 이분들은 활동이 뜸해지고 &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뀌고, 나는 어른이 되어 바빠지고 & 다른 여러 장르에 빠졌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 같다. 아무튼 하이스쿨 14년차가 되어서야 거리두기 완화 찬스로 파바밧 예매성공해서 첫 콘서트를 다녀오게 되었읍니다.

 


14년치의 감정이 쌓여서였는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왈칵하였다… 주책이야 증말… 어둠 속에서 반들거리는 옷을 입은 타블로가 Lesson Zero를 부르면서 바닥에서 솟아오르는데 손을 포갠 모습이 너무 빚어놓은 것처럼 곱고.. 목소리가 실제로 귀로 들으니 너무 낭랑하고.. 피아노 선율이 너무 따뜻하고.. 랩을 너무 야무지게 잘해서 기특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하였다.. 왈칵은 멈추지 않고 수상소감에 이어 Fly는 약간 울면서 듣기에 이른다. 옛날에는 Fly가 너무 희망적이어서(?) 대중적이어서(?) 큰 감흥이 없고 좋아하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는데 (중2병이었다고 했잖아요) 요즘은 좀 어른되었는지 Fly 가사 한줄 한줄이 와닿고 위로받고 있다. 그걸 내 아이돌이었던 아조시들이 부르면서 무대에서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걸 보는데 뭔가… 어른이 된 나와… 시간이 흘러 다 애기아빠들이 된 이분들과… 우리의 지나간 시간과…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음악과 목소리... 지금 이걸 현장에서 실제로 내 귀로 듣고 있다는 사실 등등이 모두 합쳐져서 감동을 씨게 받았던 것 같다. 확실하게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아래는 감상 도막글들! (주접주의 ^_^)

- 함성금지 공연이었다. 무대 앞 원래 스탠딩석이었던 곳에 의자가 쫙 깔려 있고 함성금지 팻말을 건 사람이 걸어다니는… 일어나지도 소리 지르지도 떼창하지도 못하고 의사표현이라곤 앉아서 박수만 칠 수 있는… 이상한 힙합 공연(ㅋㅋ)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게 답답해서 중간에 폰에 전광판 앱을 깔아서 텍스트로 주접 떨었다. (까만하트🖤) 따라 부를 수가 없으니 물개박수만 미친듯이 쳤더니 겨울철 고질병인 수족냉증이 사라졌다.💡 혈행개선 감사하구여…

- 에픽하이가 18년동안 함께한 삼인조라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싶고 18년이라는 숫자가 그냥 너무 이상하고 신기했다… 셋이 계속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오빠들 환갑 될 때까지 음악해줘야해… 애들 다 대학 보낼 때까지만 부탁합니다…

- 타블로가 폴더인사를 하며 “정말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하는데 또 왈칵했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고 난리야 흑흑… (왈칵에 더이상 이유가 필요없는 사람)

- 어떤 관객이 중간에 화장실을 가려고 조심조심 몸을 숙여서 나가고 있었던 모양인데 타블로가 조곤조곤 멘트를 하다가 그분을 보고 진짜 갑자기 “어디가세욧!” 외쳐서 개웃겼다… 불러놓고 잘 다녀오시라고ㅋㅋㅋ 그분은 조심조심 나가다가 갑자기 얼마나 놀랐을까… 하지만 호명되어서 좋겠다... 나였으면 그날 일기썼다...

- 고전곡들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실제로 들으니 특히 좋았던 곡은 (곡만 따졌을 때 - 무대 미술도 훌륭했기 때문) Lesson Zero, Face ID, 새벽에, 맵더소울, Don't Hate Me가 좋았다. 베이스랑 피아노 라인을 실제로 입체적으로 들으니까 더 좋았고 돈헤잇미는 뭔가 희망과 행복이 전해져서 좋았다. 클래식들은 사실 말할 필요가 없고… 우산 19년 떼창 그저눈물… 럽럽럽 눈물… Fan 제자리달리기 눈물… 평화의날 사진첩 눈물... 🥲

- 최근 앨범들을 열심히 듣고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9, 10집) 곡과 제목이 바로 매칭이 안 된 곡들이 있어서 좀 속상했다... (자존심 상해)... 오빠들 ㅈㅅ... 역시 공부는 미리미리… 콘서트 갔다 와서 더 열심히 듣고 있다. 내년 초에 새 앨범 나오기 전까지 마스터할것입니다...

- 이 아저씨들이 중간중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옷을 총 세번이나 갈아입은 것이 너무 잔망스러웠다… 마지막에 굿즈 후드랑 비니를 쓰고 나왔는데 그것 때문에… 비니를 안살 수가 없었다… 폭신폭신해서 기분좋은 촉감이고 따뜻해서 잘 쓸 것 같다. MD 좀 비싸게 느껴지긴 했으나 아이들 맛있는 까까 많이 사주십시오…

- 실제로 보니까 타블로는 요정 같았고 (다른 적절한 단어가 없음, 서태지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미쓰라는 과연 곰처럼 걸어다니는데 듬직해서 멋있었고 티벳여우님은 디제잉을 개깐지나게 했다. True Crime 패드로 찍으며 쌓는데 진자개멋졌음… 김정식님이 뭘 하는지 보이다니 디제잉을 배워놓길 증말잘했다…

- 모든 종류의 공연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음악은 무조건, 무조건 현장에서 실제로 들어야 한다. 아무리 고음질 공간음향 테크놀로지 음향기기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실제로 듣는 것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벌써 또 듣고 싶고 청각기억이 사라진 게 너무 슬프다. 조속히 다음 앨범을 내주시고… 콘서트를 열어주십시오… 내돈을가져가… 암여넘버원팬... 플리즈테잌마머니...


- 입장할 때 좀 춥고 흐리기만 한 날씨였는데 공연 보는 사이 눈이 내리기 시작해 나오니 소복한 겨울왕국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늘도 감동한 것이다… 너네도 우산 들었구나 구름들아…🌨 (오랜만에 주접떠니까 너무재밌네)

- 동공과 귀를 활짝 열고 실제로 보고 듣고 감동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영상을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잘 찍혔다. 13프로 만세를 속으로 많이 외쳤다. 폰에 망원렌즈 있어서 그거 어디다 쓰냐 할것이 아니엇읍니다… 인생을 살다 보니 다 쓸때가 오네예… (물론 이웃 관객들의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낮게 조용히 찍었읍니다...)

- 이 날 최고 명대사: "땡큐!" (티벳여우, DJ)

아무튼 (이제 아저씨들이 된 오빠들의) 변하지 않은 따스함과 만담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지론이 하나 있는데 에픽하이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뇌피셜 주의😘) 단순히 펀치라인이 어떻고 라임과 플로우가 어떻고 음악을 잘 만들고 이런 차원을 넘어서 에픽하이의 세상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것 같다. 디스를 할 때도 대상과 이유가 명확하며 힙합에서 흔한 쓰잘데기 없는 구린 자의식과잉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셋이 모이기만 하면 숨쉬듯이 바보같은 만담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너무 좋다) 세상을 비판할 때는 진지하게 비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삶에 명랑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게 정말 멋지다. 명랑함 다크함 사회비판 따뜻함 감성적 등 무드를 말씀해주시면 해당하는 노래 추천 해드립니다… ^_^ 선공개된 Face ID 많이 들어주시고... 내년 상반기에 나올 에픽하이이즈히어(하편) 앨범도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_^ 선생님들은 신보 작업과 육아파이팅...! ^_^

(쓰면 쓸수록 벌써 다시가고싶어요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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